
ㆍ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산20-1 ㆍ지정번호 유형문화재 제291호 ㆍ지정일자 1995년 12월 1일 이 비석은 1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고구려의 승려 아도의 행적을 적은 것이다. 도리사 남쪽 비탈진 송림 속 좌선대 근처에 있다. 아도화상사적비의 높이는 276cm, 대석의 크기는 131X 78cm이며 높이는 31cm이다. 비신의 높이는 197cm이고 폭은 83.5cm이며 이수의 높이는 69cm이다. 자연암석을 대석으로 삼고 그 위에 세웠다. 이수는 전면에 쌍룡을, 후면에 사룡을 조각하고 그 사이에는 운룡을 조식한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남향한 비의 앞면에는 상부에 가로쓰기로 '아도화상사적비'란 전자체의 제목이 있으며, 비문은 해서체로 세로쓰기를 하였으며, 첫줄에 '조선국 경상도 선산부 냉산 도리사 아도화상사적비'라 하였다. 비의 뒷면에는 자운비가 새겨져 있다. 이 비석의 건립연대는 자운비의 말미에 '승정 즉위후 이십팔년 오월 일립'’이라고 하여 1655년(효종 6)에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비문에 의하면 아도는 어머니 고도령의 권유에 의해 5세 때 출가하였다. 그는 선산 모례의 집에 숨어 신라에 불교를 전하여 노력하였다. 그 후 경주로 가서 성국공주의 병을 구하고 불법을 전하다 귀족들의 반발로 여의치 않아 다시 선산 모례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겨울인데도 복숭아ㆍ오얏꽃이 만발하였음을 보고 그 곳에 도리사를 지었다고 한다. 도리사 불량답시주질비의 높이는 161cm이고 지대석의 높이는 10cm이며 길이는 187cm이다. 비신의 높이는 111cm, 폭은 45cm이며 개석의 높이는 29cm이고 보주의 높이 11cm이다. 자연암석을 대석으로 삼아 세웠으며, 개석의 전후면에는 태조선으로 양각한 연봉과 줄기가 조식되었고, 좌우측면에는 2단의 원조대가 있으며, 위에는 보주를 면각하였다. 비문은 해서체로 가로쓰기를 하여 '도리사불량답시주질' 이라 하고 도리사에 토지를 시사한 시주의 이름과 논, 밭의 면적을 새겼다. 끝에 ‘강희오십일년임진십이월 승통 능철 석수 김성원이란 명문이 있어, 1712년(숙종 38)에 승통 능철의 주관 아래 석수 김성원이 글자를 새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자료제공 : 구미문화원
 아도화상사적비
 불량답시주질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