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이야기(56) 아버지의 누명을 벗긴 효자
편집부
/ gmitnews@hanmail.net
입력 : 2016년 0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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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규의 자는 사운이고 호는 연미정이니, 인동사람이다. 그의 아버지 시호는 성질이 곧아서, 남들이 옳지 못한 일 하는 것을 보면 꾸짖으면서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신년(1800) 6월에 정조 임금이 승하하자, 시호의 부자·형제가 모두 고기반찬 없는 식사를 하고 삭망에는 곡을 했다.
그때 고을 사또 이갑회가 자기 아버지의 생일을 맞아 잔치를 베풀고 손님을 청했다. 그러나 시호만은 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사또가 술과 고기를 보내자, “선왕께서 아직 빈궁에 계신데, 잔치 음식을 받는 건 예가 아니오.” 라고 말했다.
사또가 부끄럽게 여기면서도 분해서, 팔월 보름에 도리어 “시호가 몰래 소를 잡아 금지령을 어겼다.”고 모함하며 혐의를 두려고 했다.
시호의 형이 분함을 참지 못해, 머슴 서넛을 거느리고 밤중에 관청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사또가, “어허, 너희가 죄를 지었으니 어찌 벗어날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때 서리 박아무개가 또한 시호 집안에 일찍이 죄를 지은 일이 있어서 마음속으로 늘 못마땅하게 여겨 오다가, 이 일을 기화로 없는 죄를 얽어서 안찰사에게 아뢰었다. 안찰사 신기는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조정에 아뢰었다.
당시 재상이 마침 영남 사람들을 미워했으므로, 큰 옥사를 꾸몄다. 시호도 결국은 횡액을 만났고, 처자식들은 정순(貞純)왕비가 가엽게 여기고 특명을 내려 강진(康津)앞바다 섬으로 귀양 가도록 해주었다. 이때 시호의 아내 배씨가 임신을 하고 있었는데 옥중에서 아들을 낳으니, 바로 석규였다.
석규가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못 돼 배 씨가 강보에 싸 업고 남해안 외딴섬 강진으로 귀양 갔다. 온갖 위험한 고초를 다 겪었으니,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석규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남달랐는데, 차츰 자라면서 자기 집안이 당한 괴로움을 들을 때마다 흐느껴 울며 원수들의 이름을 기억했다.
이곳 섬사람들은 인심이 사나와 고아와 과부를 능욕하고 괴롭히려 했다. 배 씨가 그 큰딸과 함께 바닷가에 빠져 죽으니, 석규는 겨우 아홉 살이었다. 더욱 외로워지고 의지할 데가 없어지자 마음속으로 맹세하길,
“내가 죽으면 누가 집안의 원수를 갚으랴? 문자가 아니면 이일을 밝히기 어렵고, 금전이 아니면 이 일을 이루지 못하리라.”했다.
힘써 품을 팔면서도 틈나는 대로 마을 사람들에게 글을 배우려 했는데, 사람들은 화가 자기에게까지 미칠까 걱정돼 가르쳐 주려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창밖에서 남의 집 아이들이 글 배우는 소리를 훔쳐듣거나, 또는 책을 끼고 길거리에 나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글자를 물어, 끝내는 경전과 역사에 통달했다.
알뜰히 속셈을 차리고 여러 가지로 부지런히 일하니, 재산이 차츰 늘어났다. 이웃에 사는 젊은 과부가 석규의 사람됨을 흠모해 중신할미를 보내어 짝이 될 뜻을 비췄다.
그러나 석규는 이를 거절하고 양반집 딸과 혼인했다. 석규는 살아서 아버지 얼굴을 보지 못한 것을 늘 한스러워하며, 뒤늦게나마 삼년상을 지냈다.
군자들이 이르길, “예법에는 없는 일이지만, 또한 정에서 나왔도다.”라고 했다. 늘 잘 때도 이부자리를 깔지 않았으며, 식사 때에도 고기를 먹지 않았다. 그리곤, “약간의 재산과 곡식은 장차 쓸 곳이 있으니, 어찌 내 입과 뱃속을 채우랴.”라고 했다.
밤마다 신골짜기에 들어가서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기도를 올렸는데,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춥거나 덥거나 간에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높은 관리가 귀양왔다하면 반드시 찾아가 뵙고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원통한 사연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렸다. 한번은 학질에 걸렸는데, 의관을 바로하고 단정히 앉은 채로 떼어냈다. 또 한 번은 옴이 올랐는데, 석 달 동안이나 손으로 긁지 않았더니 저절로 나았다. 그의 마음씀이 이처럼 단단했다. 아들 기원(琪遠)이 태어나자 석규가 기뻐하며, “내 발이 이 섬을 떠나지 못해 누명을 씻을 길이 없더니, 이제야 네가 태어나 내 소원을 풀어주겠구나.”라고 했다. 기원이 열다섯 살이 되자 짐을 꾸려 서울로 보냈다.
임금이 거둥하시는 길 위에 자주 엎드려 무죄를 호소했는데, 전날 섬에서 알게 된 높은 관리가 귀양에서 풀려 조정에 있다가 많은 도움을 줬다.
임금의 장인 김문근(金汶根)이 보고서 가엾게 여겨, 임금께 아뢰어 마침내 누명을 벗겨줬다. 그러나 석규는 벌써 병이 깊어졌다. 고향 선영으로 옮겨 장사 지내려고 어머니와 누이 무덤에다 글을 지어 아뢰는데, 그 글이 매우 구슬퍼서 보는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
병이 위독해지자, 아내 차씨가 손가락을 끊어 입에다 피를 흘려 넣으려고 했다. 석규가 눈을 뜨고 보더니, “죽고 사는 것은 천명이오, 남자는 부인의 손가락을 끊게 하지 않는다오.”하며 물리치게 하고는 마침내 죽으니, 철종(哲宗) 신유년(1861) 3월이었다.
그가 일찍이 “옛말에 ‘이 일을 이루지 않고는 이 사람이 죽지 않으리라’ 했는데, 바로 나를 두고 한 말이다. 만약 이 일이 이뤄지면 내 마음과 힘이 다 지쳐서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다. 아내 차 씨는 남은 아들과 함께 상복을 입고 영구를 받들어, 바다를 건너 고향으로 돌아가 선산에 장사지냈다.
자료제공: 구미문화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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