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잘사는 나라의 기준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편집부
/ gmitnews@hanmail.net
입력 : 2016년 09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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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지금이 단군 이래 제일 잘사는 시대’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적잖은 사람들로부터 여기저기 해외를 여행해봐도 한국만큼 살기 좋은 곳이 없더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어떤 나라들은 너무 가난하고,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도 가보면 생각보다 불편한 점이 적지 않으며 소비수준은 한국만 못한 경우가 많더라는 것이다.
최근 들어 청년 세대가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도, 집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어쩌면 이들은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가 될 수 있다는 전망 속에서 한국에 대한 예찬은 한풀 꺾인 상태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딜 가나 한국과 비교해서 잘사는지 못사는지 우선 견주어보기부터 하는 한국 여행객의 습관이 크게 바뀐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멀고 낯선 곳까지 가서 주로 우리네 사는 형편이 낫다는 걸 확인하고 온다면 다소 허탈한 일이기도 하거니와 여기서 흔히 말하는 잘산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인가도 짚어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소비할 능력이 커졌다고 해서 잘산다고 하기엔 막상 한국사회 구성원들이 실제로 체감하고 있는 삶의 만족도가 너무 낮으니 말이다. 그나마 어려운 시절을 거쳐온 부모나 조부모 세대들에 비해 한국이 이미 잘살게 된 1990년대 이후 출생한 젊은 세대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지금이 낫다고 할 실감마저 부족한 경우가 많으니 미래가 암담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잘사는 나라, 흔히 선진국이라 부르는 나라들의 차이는 소비의 풍족함이나 편리함과는 다른 데 있다는 생각이다. 언젠가 필자가 일본에 단체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지방의 작은 도시들은 규모도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역사가 오랜 시가지의 집들은 낮고 소박했다. 그러다 버스가 도시를 벗어나 산길로 들어서고 시골마을 사이를 통과하게 되자 함께 갔던 주로 중장년층 일행들 입에서는 생각보다 일본도 사는 게 그저 그렇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일본도 지역마다 사는 모습이 많이 다를 테지만 우리가 지나간 곳은 궁벽해 보이지도 않았고 말끔하게 잘 정돈된 마을이었지만 두드러지게 윤택해 보이지도 않았다.
하루의 여정을 마치고 저녁 자리에서까지 사는 게 한국이 낫니 일본이 낫니 하는 이야기가 중구난방 이어지는 가운데 누군가 시골에 가보니 일본이 확실히 한국보다 선진국이더라는 말을 꺼냈다. 지나온 작은 마을마다 동네 의원이 살아 있고, 지역 여기저기에 도서관과 병원들도 눈에 띄더라는 것이다. 무심히 지나쳤지만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일본이 아닌 흔히 선진국이라고 하는 서유럽이나 북유럽의 나라들을 가봐도 사실 일반 시민들의 생활은 다소 불편할 정도로 검소한 경우가 많다. 물가는 비싸고, 일처리는 늦고, 그렇다고 딱히 친절한 것도 아니지만 사는 데 필요한 기본은 공공영역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갖춰져 있는 것이 이른바 선진국이다.
돌이켜보면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정권은 여러 차례 바뀌었어도 선진국을 따라잡아 잘사는 나라가 되겠다는 목표는 바뀐 적이 없다. 그러나 국가 전체로 보면 그때 따라잡고자 한 선진국의 경제규모나 소득수준을 넘어서기도 한 시점에 이르러서도 고단하고 억울하고 불안한 삶은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든 노력하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에 비해 아무리 애써도 앞날은 막막할 뿐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늘었다는 점에서 과거보다 후퇴한 면마저 있는 것이고, 불안한 삶은 사회적인 갈등의 격화로 나타나고 있다.
결국 이제는 그냥 더 잘살기 위해 경제규모를 키우는 것으로는 한국사회의 삶이 나아질 수 없음을 직시할 때가 왔다고 본다. 인간이든 자연이든 삶의 자원이 유한한 세계에서 잘사는 사람만 잘사는 게 아니라 고루 잘살고자 한다면 현실적으로 화려하고 편리한 삶, 빨리빨리 나 좋은 것이 척척 이루어지는 삶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선진국이지만 검박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무엇이 기본인지를 판단해서 함께 고루 누리기 위해서라면 꼭 필요하지 않은 부분의 풍요로움을 희생할 수 있는 안목 있는 사회가 선진국인 것이다. 한국도 이제는 잘사는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의 전환을 통해 함께 더 잘사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시점이다.
<한국저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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